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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09-03-11 10:56
풀 -- 결코 배신하지 않는 친구이자 스승
 글쓴이 : 작은농부
조회 : 2,146  
3월 초엔 으례 꽃을보러 들로 산으로 쏘다니곤 했었다.

들녁은 아직 황량한 겨울 이미지지만 외롭게 혹은 수줍게 피어있는 작은 꽃들을 발견하면 어찌이리도 반가울꼬?
유난히 풀을 좋아하는 나는 하염없이 걷거나 숲속을 헤메일 때도 심심하거나 무료한줄을 모른다.
이름은 잘 모르지만 다양한 종류의풀들을 요리조리 바라보기도하고 특별히 그곳에 유난히 많은 종류가 있으면 흙상태나 습기등도 다시한번 보기도 하고,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해가는 모습을 상상해 보기도하다보면 몇시간은 금새 흘러가버린다.

풀을 좋아하다보니 산나물이나 약초채취에도 일가견이 있다.
유심히풀을 관찰하는 습성덕에 어디에 가면 무엇이 있다는 걸 대충 알기때문이다.
농사를 짓게되면서부터는 풀들을 더 자세히 관찰하게 되었다.
제초제 없이 농사를 짓는다는 것은 거의 풀과의 전쟁이기 때문이다.

몇년간은 동네 어른들에게 혼나기도 많이 했다.
풀농사 짓는거냐고,풀을 못잡으면 곡식이 않된다고,제초제를 쓰라고,천년 만년 살려고 그러느냐고.....
어른들 말 듣지않은 덕택에(?) 댓가는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고생은 남들보다 몇배나 했건만 수확은 거의 없었으므로.

밭의 풀들에겐 나도 참 모질게 대했었다.
진한 소금물을 뿌려보기도 했고,목초액 원액을 뿌려도 봤고,석회 유황합제 원액을 뿌려보기도 했고,심지어는 가스통을 매고가서 토치램프로 태워보기도 했었다.
허나 결과는 항상 풀의 승리였다.
재배하는 작물들은 그렇게 돌봐줘도 부실한데 풀들은 어찌그리도 강건하던지!몇년간의 고생끝에 몇가지 깨닿게 됐다.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사실,그리고 용감한만큼 손발이 고생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몸으로 확인한 것이다.

공부해야한다.
특히 농사짓는 사람은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한다.
머리속으로 암기하는 공부가 아니라 몸으로 받아들이는 공부를 해야한다.
무릇 생명체는 시간의 흐름속에서 나고 자라고 생을 마감한다는 지극히 단순한 사실을 내가 몸으로 배우는데는 지독한 고생과 함께하는 몇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풀들도 마찬가지다 .
계절별로 자라는 풀들이 다르고 또 같은 풀이라도 어릴때는 천천히 자라지만 덩치가 어느정도 되면 그속도는 엄청나다.
또 작물들이 이길수있는 풀도있고 정말로 요주의 풀들도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맹위를 떨치는 바랭이나 고추풀 강아지풀등은 매주는 시기를 놓치면 함부로 싸울 생각을 말아야한다.
또 풀을 뽑다보면 비오기전엔 쏙쏙 잘도 뽑히던 녀석들이 비를맞은 다음날 이나 그 다음날 뽑을라치면 호미를 쓰지않으면 안될정도가 된다.
자랄수있는 여건(물)이되니 순식간에 뿌리를 키워놓은 결과다.

조금 알게되니 방법도 달라진다.
우선 풀이 아예나지않도록할것.볏집이나 낙엽등으로 두텁게 덥어주거나 비닐피복을 한다.
풀이나는것을 막지못했다면 어릴때 김매기를 해줄것,그리고 비오기전 햇볓 좋은날 풀과 싸울것.

작년 고추농사에서는 풀을 한번도 매지않고 고추를 키워낸 혁혁한 전과를 올리기도 했다.

시작한김에 풀과 싸우는 예기를 조금 더 해보자.
사람의 정자가 수정에 성공할 확률은 수억분의 일.이정도는 아니지만 풀씨가 적당한 조건을 운좋게 만나 발아할 확률도 만만치 않다.
어렵게 뿌리를 네렸으니 어떻게든 살아남으려 최선을 다하겠지.
또한 그밭에 많이나는 풀들은 수만은 세월을 지나며 자신들이 살기에 적당한 장소를 찾아낸 결과일터.
그러니 따로 인간의 관리가 없더라도 잘 자랄수밖에!

그렇다면 내가가꾸는 작물들은 어떨까?
자연의 시각에서 본다면 거의 대부분이 기형 내지는 열성 돌연변이라봐도 무방할게다.
왜냐하면 인간을 먹여 살리기 위해 열매가많이달리도록 ,부드럽고 맛있도록,크게,색깔좋게육종한것들이 자여스러운거는 아닐테니까.
풀과 작물이 같은곳에 존재할시 풀이 반드시 이기게되는이유가 여기에 있다.
때문에 농사짓는 자는 작물대신 풀과 싸워야만되는게다.
최근엔 풀로 풀을 제어하는 호밀농법이나 자운영농법도 등장했다.

풀예기 하려다 엉뚱한데로흘러 풀과싸우는 예기가 길어졌다.
싸우는예기는 이쯤하자.

풀 예기로 다시가보자면 풀은 우선 믿을 수 있다.
때가 되면 어김없이 싹을 틔운다.
태양으로부터 일정양의 에너지를 받으면키를 키우기 시작하고 또 일정양의 에너지를 받으면 곷을 피우고 열매를 맻는다.(온도에 민감해서 누적온도에 정확하게 반응 함)

두번째는 강하다.
자연의 섭리에 거스르지않고 순리에 맟게 생명활동을 한 결과다.

세번째는 말이 없다.
문제가 생기면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견디어낸다.
그리고 어울림에 능하다.
작은 풀들이 초봄에서 여름까지,큰풀들은 여름에서 가을까지 시간상의공간분할이랄지 공간상의어울림으로 비틈없이 산하 들판을 채워놓는 모습을 보노라면 실로 대단하다할밖에.